블로그 이미지
지구력강한사랑

가끔 문득 때때로 조잘조잘

Rss feed Tistory
일상/공개된속마음 2015. 4. 5. 01:14

20150404 토이 콘서트

나는 원래 김동률을 더 좋아했다. 토이 노래는 좋긴 한데 어쩐지 궁상맞기도 하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유희열에 익숙해져 버렸다. 늦은 밤 라디오를 켜면 늘 '오빠'가 있었다. 어떤 날에는 정말 근사하게 음악 이야기를 했고, 어느 날엔 진짜 우리 오빠처럼 잔소리도 하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툭툭 던지며 낄낄거렸다. 오빠 따라 나도 덩달아 낄낄거리다가 눈물 찌익 흘리다가 오빠 목소리 들으며 잠이 드는 날이 많아졌다(주로 '그녀가 말했다' 코너 때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렇게 웃다가 울다가 토닥토닥 위로받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 심지어 오빠는 미남이니까!


오빠가 음도에 있으면 시민이 되었다가... 라천민도 되었다가... 고양이 똥구멍 클릭해야 들어갈 수 있는 다방민도 되었다. 남들처럼 '팬질'은 못했지만 그냥 좋아했다.


'라천'할 때 오빠는 늘 이상한 걸 시켰다. 오빠가 "나는" 외치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얼 하며 라디오를 듣고 있든 "행복하다"를 외치게 했는데 처음에는 이게 뭔 짓인가 했다가 나도 어느새 이불 속에서, 책상에 앉아 "행복하다"라고 외치게 되었다. -___-


오늘 콘서트 첫 곡은 역시'라디오 천국'이었고, 오빠는 "나는 행복하다"를 외치게 했다. 우린 또 라천민이 되어 그걸 우렁차게 했다. ㅋㅋㅋ 그게 별게 아닌데... 참 별게 아닌데... 울컥했다. 아, 맞아. 라디오 천국 연주곡을 들으면 가슴이 뛰었지... 저걸 외치며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하나가 되었었지. 나는 별것 아닌 거에 낄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사람이었지.


오빠는 그렇게 함께한 시간들에 대해 "시간의 두께가 두터워졌다"고 표현했고, 오늘 '언젠가는 소년이고 소녀였을 우리 청춘의 반짝이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돌려주겠노라 했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그 순간들을 돌려주었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의 의미를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힘들지... 너 잘하고 있어... 라는 말을 진심으로 건네는 사람, 우리 이쁜이들... 우리 토순이-토돌이들이라는 말을 참 예쁘게 할 줄 아는 사람, 못하는 노래 정말 정성껏 부르고 뭐니 뭐니 해도 음악 할 때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나에게 유희열은 음악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란 '흘러간다'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시간은 쌓여서 두터워지는 것이고,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함께 걷는 존재라는 의미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처음부터 울컥하여 중간에 찌익 울다가 미친 듯이 웃고 소리 지르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났다. 정말 한순간도 피곤하지 않아 놀랐다. 콘서트 전에 농담처럼 '다음 콘서트는 디너쇼를 해야 할지 몰라'라는 말을 했는데 다음 콘서트도 이렇게 해도 되겠어. 고마워요. 정말.


그... 그래도 김동률 짱.




'일상 > 공개된속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404 토이 콘서트  (0) 2015.04.05
20150402 잡문에 관하여  (0) 2015.04.02
[공개된속마음] 어떤 죽음(들)  (0) 2014.10.28
[공개된 속마음] 공부  (0) 2014.03.11
[공개된 속마음] 정말 정말일까?  (0) 2014.03.11
[공개된 속마음] 불금, 지하철  (0) 2014.03.11
일상/공개된속마음 2015. 4. 2. 19:30

20150402 잡문에 관하여

며칠 전, 인터넷 서점에서 평소 좋아하던 저자의 신간 소식을 듣고 살펴보는데, 이런 평가가 눈에 띄었다. "주로 잡서 위주의 글을 써온 사람" 때때로 저자가 자신의 저작을 낮춰 '졸저'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지만 타인의 글을 굳이 '잡서'라 폄훼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면, 글쟁이들은 유난히 자신이 쓴 글을 '잡문'이라 표현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어떤 글이 잡문이고, 어떤 글은 잡문이 아닌 걸까? 물론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토해낸 글들은 잡문일까, 아닐까.

 

잡문일지언정, 꾸준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일상 > 공개된속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404 토이 콘서트  (0) 2015.04.05
20150402 잡문에 관하여  (0) 2015.04.02
[공개된속마음] 어떤 죽음(들)  (0) 2014.10.28
[공개된 속마음] 공부  (0) 2014.03.11
[공개된 속마음] 정말 정말일까?  (0) 2014.03.11
[공개된 속마음] 불금, 지하철  (0) 2014.03.11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10. 28. 15:25

[공개된속마음] 어떤 죽음(들)

2014년 10월 27일. 마왕이 세상을 떠났다.



중학생 시절, 어딘지 모를 '멋'이 나는 대학생 가수 오빠가 나타났더랬다. 매력적인 저음에, 당시의 대중 가요와는 다른 차원의 철학적 가사들이 가득 담긴 그의 노래들은 사춘기를 맞이한 나의 속 깊은 친구였다. 그의 노래들을 전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테이프에 복사해서 친구들과 돌려들으며, 나는, 그와 함께 사춘기를 보낸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정서적 빚을 졌노라, 그를 추억하곤 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죽음 소식을 들었다(26일에 돌아가셨지만 사망 소식은 27일에 접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단원고 2학년 5반 인태범' 군의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은지 한달도 못되어 아들 곁으로 떠나셨다. 아들이 왜 바다에 갇혀 죽어야 했는지 그 원인도 밝히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두 죽음을 대하는 우리(적어도 SNS/언론)의 태도는 참 많이 달랐다. 신해철은 그를 추억하고 아끼는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지만, 태범이 아버님은 외롭고 쓸쓸하게 떠났다. 죽음의 무게를 함부로 재볼 수 없다지만, 적어도 어제 내가 접한 두 죽음의 무게는,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시소같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인터넷에서 신해철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았다가 늦은 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나의 소중한 시간 한 부분을 잃어버린 듯한' 생각이 들어 잠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태범이 아버님 죽음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면,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 만난적 없는 그에게 갚지 못할, 빚을 졌다는,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부채의식. 신해철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를 나의 학창 시절과 연결하여 (쉽게) 추억하기만 하면 되지만 태범이 아버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지속된 부채의식이 날카로운 통증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다. 이 시대를 통과하는 사람의 천형(天刑)처럼 집요하게 우리 기억에 새겨질 것이고, 자유로울수 없다. 그렇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 죽음의 부채 의식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힘껏 달아나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같은 날 맞이한 두 죽음을 대하는 내 태도를 의식하고, 점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떤 죽음(들)에 대해 내가 갖추어야 할 예의고, 잃지말아야 할 문제 의식이다.


2014년 10월 27일. 마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태범이 아버님을 포함한 어떤 사람들도 세상을 떠났다. 어떤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어떤 죽음은 비통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죽음이 갑작스럽고 비통하며... 삶과 죽음의 무게는 우주만큼 무겁기도 하고, 먼지보다 덧없기도 하다. 신해철의 노래에는 늘 (유한한) 삶과 (영원한) 죽음이 함께 담겨있었다. 그는 '존재할' 죽음 앞에 '존재하는' 삶을 여미는 삶에 대해, 지금을 성찰하고, 죽음을 의식하는 삶에 대해 노래했고, 그 의미들에 대해 질문을 그치지 않을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것이 내가 일관되게 읽었던 신해철 노래의 메시지였고, 어떤 죽음(들)을 통해 지금 그것을 꽤 엄중하게 되새기는 중이다.






'일상 > 공개된속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404 토이 콘서트  (0) 2015.04.05
20150402 잡문에 관하여  (0) 2015.04.02
[공개된속마음] 어떤 죽음(들)  (0) 2014.10.28
[공개된 속마음] 공부  (0) 2014.03.11
[공개된 속마음] 정말 정말일까?  (0) 2014.03.11
[공개된 속마음] 불금, 지하철  (0) 2014.03.11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36

[공개된 속마음] 공부

2014.03.10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학복협에서 연차가 쌓여갈 무렵, 학복협을 떠나게 되었을 때 특히 많이 들었다. 두가지 이유였다. 첫째, '학벌 업그레이드' 차원의 공부. 황당하고 속물적인 이유지만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사역을 오래 하다보면 '타이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더럽고 치사해서' 공부를 시작한 사례를 알기에... 지난번 글에도 밝혔지만 내세울 것없는 학벌을 가진 나는 그 조언조차 귀담아 들었다. 둘째, 내가 하는 일의 전문성과 깊이를 더하기 위한 공부로서의 조언이었다. 두번째 이유 역시 타당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가지 이유였다. 첫째, 공부할 돈이 없었고 집안 형편상 돈을 벌어야 했다. 둘째,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었고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할만큼 깊게 파고들어 공부 하고 싶은 분야를 못찾았다. 아니, 관심 분야가 얕고 다양했다. 그래서 그냥 '여러가지학과'가 있다면 가겠다고, 둘러댔다. 셋째, 단지 '학벌 업그레이드'을 목적으로 대학원 공부하기엔 동기부여가 별로 안되었다. 지방대 학부 출신의 여성 간사가 갈 수 있는 최대치는 어딜까, 도전해보고도 싶기도 했다(는 이유는 허세).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측면도 있다. '발전없이 반복하는 나'를 느낄때... 어쩔수 없이 능력의 한계를 경험할 때... 아쉽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깊고 폭넓은 개념과 언어로 구현하고 싶을 때 속상하다. 가끔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까' 막막해질 때 공부라는 도피처를 갈망하기도 한다. 활동가의 삶이란 가끔 봄날 오후 나른한 하품과 같기도 하여서, 존재 의미와 미래를 공부에 의탁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동생 간사들에게는 '할 수 있을 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곤 한다. 


요즘에는 문득... 내가 공부를 더 하지 않았던 (숨은) 네번째 이유를 기억하곤 한다. "공부를 많이 하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질문에, 나는 아직 답을 내지 못한 것 같다. 요즘에는 그런 회의를 더 자주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33

[공개된 속마음] 정말 정말일까?

2014.03.09




딸을 터키로 여행보내는 어느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터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는 딸의 계획을 듣고 고민에 빠지셨나 보다. 아주머니는 "거(기)까지 갔는데 해볼 건 다 해봐야지!"라며 두둔했고 아저씨는 "쩌~어번에 아랍쪽에서 그런게 추락했다던디... 물론 터키가 아랍쪽은 아니지만서두 우리나라는 안전한디 터키는 후진국이라 위험한디..."라며 반대를 했다. 아 우리나라는 안전하고 터키는 후진국이었구나. 그랬구나. 


뒷자리 그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나를 툭툭치더니 파인애플을 권하셨다. 느닷없는 파인애플 선물에 당황했지만 거절하면 무안하실까봐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하나를 집어들었는데 어쩐지 느낌이 안좋았다. 역시 아주머니는 "교회 다니세요?"라며 포문을 여셨고 나는 그 예측한 질문을 파인애플 꿀꺽, 삼키며 담담하게 소화했다. "네, 다녀요." "어느 교회다녀요." "동네에 있는 교회요." 그렇게 우리 대화는 잘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부시럭 뭔가 꺼내더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군자 기질 검사>라는 걸 아느냐고. 


처음 듣는 말이라 잠시 흘낏 보니 새로운 유형의 기질 테스트인 모양이었다. 참, 별 것도 다 있네, 호기심이 생겼지만 어쩐지 거부감이 생겨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이르시길,


"아가씨가 교회 다닌다니 하는 말인데 이걸로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면 신앙도 좋아지고 하나님 말씀도 더 깊게 다가와요. 그리고 전화로 상담(이게 이 조사의 핵심인 것 같았다)도 해줘요." 


사군자 기질 검사가 기독교 신앙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만약 내가 '교회 안다닌다.'고 답했다면 이 이주머니의 '플랜 B'는 뭐였을까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마치 '집에 사과나무 있지? - 없는데요. - 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 종류의 대화 패턴이었달까. 덕분에 파인애플 두조각 잘 먹었다. 그런데 나는 그 파인애플 조각을 먹으며 '혹시 이거 먹으면 스르륵 졸음이 와 지갑 털리는거 아닐까?' 의심했으니 사군자 아주머니께는 살짝 죄송하다. 


아침에 <꽃보다 할배 - 스페인>을 보는데 지난 겨울 여행 루트랑 거의 동일하여 반가웠고 바르셀로나에서 할배들이 머물게된 숙소가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여서 신기하여 페북에 글을 올렸는데 타임라인에는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의 자살에 대한 추모글들이 보였다. 바로, 내 글을 삭제했다. 그냥, 무기력하게 미안해서. 


아저씨, 우리나라가 안전하다고요?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29

[공개된 속마음] 불금, 지하철

2014.03.08





전화로 남친과 싸우던 여성은 급기야 "알았어. 그럼 내일부터 아무데도 안가고 집에 있을테니 너도 그렇게 해. 됐지?" 라고 최후통첩을 했고 흥에 겨운 힙합 청년들은 역 안내 멘트가 나올때마다 따라하며 낄낄거렸다. 내 맞은편 아가씨가 입은 코트가 너무 예뻐 하마터면 그 옷 어디서 사셨냐고 수줍게 물어볼 뻔 했다. 어디선가 야채 방구와 삼겹살 트림 냄새가 나고 배가 너무 부른 나는, 역시 글은 살짝 배고플 때 잘 써지는구나, 생각했다.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27

[공개된 속마음] 판타지와 비극적 현실

2014.03.07





나중에 긴 글로 소화할 수 있길 원하며 생각의 조각을 기록해두기로 한다. 


판타지. 

최근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나 <로맨스가 필요해>같은 드라마를 보면 판타지의 궁극을 볼 수 있다. 이젠 본부장이나 재벌 2-3세 따윈 감히 명함도 못내민다. '모든 것이 가능한' 능력쯤 갖춰주고... 삼각관계 따윈 깔끔하게 무시하며 나만 바라봐주는 남자여야 한다. 그게 아니면 '로필'의 남자 주인공처럼 '현실적으로' 집안 경제력 넉넉하고(그러나 식상하게 재벌은 아니어야 한다)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그러나 고리타분하게 본부장은 아니어야 한다) 나만 사랑해주는 연하남(최소 6살 이상은 어려야 한다)은 어떤가? 


<별에서 온 그대>가 판타지의 궁극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해피앤딩 그 이후를 그리는 방식때문인데... '둘이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지? 겪어봐라. 웬수가 따로 없고...' 라는 '깨는' 현실로 굳이 돌아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력해지는 때는 '관계를 책임져야 하는 순간의 일상의 무한 루프'를 경할때일텐데... 별그대는 이런 현실적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차단해버렸다. 비정기적으로 우주를 다녀와야 하는 도매니저의 운명덕분에 그들의 허니문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도매니저가 우주랑 두 집 살림하고 있다가 들킨다면... <사랑과전쟁> 찍어야 하나?


판타지의 판이 커질수록 현실은 비루해진다. 도매니저는 가능할리 없으며 '로필'처럼 실제로 6살 연하남이 적극적으로 구애할 가능성이란 개미가 덩크슛할 확률과 같다. 막장 아니면 판타지가 대부분인 드라마는 그렇게 '사랑의 일상성'을 허무하게 만든다. 


비극적 현실. 

'로필3'에서는 싱글맘도 당당하고 여성이 주체적으로 결혼하지 않을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결혼하지 않은 30대 이상' 그룹은 사회의 '비정상' 영역을 담당한다. 어느 칼럼을 보니 싱글인 필자가 "혹시 몸에 문제있니?"라는 질문을 받았다는데... 나는 '남자한테 관심이 있기는 하니?'라는 질문도 받았었다. 그런 무례를 일상적으로 받아내야 하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짝>의 여성 출연자가 자살한 비극적 사건이 빌생했다. 이 사건을 두고 제작진의 무리한 진행을 비난하거나 '서바이벌' 포맷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일방적 강요와 다양한 개인의 삶에 대한 몰이해와 무례가 통용되는 사회를 통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녀가 왜 자살을 했는가... 란 질문과 동시에 이 사회에서 <짝>이란 프로그램이 어떤 의미로 존재했는지... 왜 수많은 청춘남녀들은 그토록 절박하게 <짝>으로 내몰렸는지... 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다.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23

[공개된 속마음] 나를 스쳐지나 간

2014.03.06





꼬꼬마 시절, 우리집 비상약 '어린이 아스피린'이 사탕일 줄 알고 눈에 보일 때마다 야금야금 먹었었다. 그때 '과다복용'의 결과인지 상관관계를 빍힐 방법은 없지만 감기에 잘 안걸린다. 걸리더라도 '방금 나를 스쳐 지나간 너, 감기였니?' 수준이다.


오늘 하루종일 나는 분명 감기에 걸렸었다. 콧물도 찍찍 흘리고 코맹맹이 소리도 났다. 식은땀도 흘렀다. 그런데 수요모임에 뒷풀이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감기야, 어디갔니? -.-


감기에 잘 안걸리지만 어쩌다 걸리면 '개무시 작전'을 쓴다. 감기가 날 괴롭히든 말든 약도 안먹고 버틴다. 그리고 이 작전에서 나는 늘 이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니...'내가 감기를 무시한게 아니라 감기가 나를 무시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마저... 너마저 나를 외롭게... 응?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20

[공개된 속마음] 결, 그리고 한끗차이

2014.03.04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지만 나는 사람이라 외모를 본다. 물론 '내 눈에 예쁜'이라는 조건이 있지만 어쨋든 외모를 따진다. 책을 볼때도 그렇다. 책을 읽기보다는 사는 것만으로도 '지식인' 흉내내는 허세 아가씨는 책의 외모를 본다. 취향이 독특하여 표지 디자인보다는 내지 디자인을 꼼꼼하게 보는 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글자들을 띄어쓰기와 행간으로 나누고, 다시 자간과 장평 등 미세한 틈을 조절하고... 폰트와 폰트 굵기... 그리고 제목의 별색 선정에 이르기까지 본문 디자인은 기본에 충실해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다. 디자인 뿐 아니라 목차의 생김새부터 각주와 미주, 색인의 배열에 이르기까지 책의 만듦새를 섬세하게 정하고 책이 제 숨을 쉬기까지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결'이 오롯하게 드러난 책이 좋다. 오늘 <공부란 무엇인가>(책담)를 들여다보며, 그 결이 참 고와서 혼자 감탄을 했더랬다. 책을 사랑하는 편집자의 고운 '결'이 느껴져 고마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오후에는 디자인 작업을 했다. 당장 이번주에 봄 강좌를 오픈해야했기에 여러 종류의 웹포스터를 제작해야 했다. 디자인 영역에서는 까막눈이므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구글링'을 앞세워 참고하는데... 여러 이미지 중 그 중 멋진 이미지를 참고한다지만 비슷한 이미지라도 막상 내가 구현하면 어쩐지 허접해지는 건 도리가 없다. 오늘도 텍스트를 이리저리 배치하며 고민했지만 '한끗차이' 아니 '한참차이'의 한계를 경험해야 했다. 아~ 약올라.


어떤 '결'이 생기고... '한끗' 혹은 '한참'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일이란 생각보다 지난한 시간과 은근한 지구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멀었다. 난. 



일상/공개된속마음 2014. 3. 11. 19:17

[공개된 속마음]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2014.03.03




여러 차례 소개팅을 했었지만 소개팅남의 이름을 모두 까먹었다. 심지어 소개팅 당일날 즉시 기억에서 소멸된 경우도 있다. 기억이란 주관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어떤 상황은 LTE급으로 잊히지만 어떤 풍경은 집요하게 기억에 남기도 한다. 자체 편집인 셈이다. 기억과 마찬가지로 어떤 생각이나 말도 주관적이고도 이기적인 판단에 따라 자체 편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편집된 것들을 '말하지 않는 것'이라 이름붙여 보자. 


'말하지 않는 것' 너머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며칠 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끊임없이 회자되었던 '송파구 모녀 자살' 이야기에 대해 나는 사람들의 반응과 반대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기사를 공유하며 내 생각을 덧붙이는 것조차 절망스러워 차라리 그래버렸다. 그 비극은 도저히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불가능하여 내겐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풍경들이 점점 늘어간다. 


언제부터인가. 페북 타임라인에 묵직한 세상 뉴스를 공유하기 버거워졌다. 무력감이랄까, 죄책감이랄까, 그런 종류의 감정이 내 일상을 짓누르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여 슬픔도 노여움도 편집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이런 일에만 분노하지 말고 거대한 악... 박근혜 정권에 분노하라."


이런 탄식을 종종 마주한다. 맞는 말이라 뜨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섭섭하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전부는 아닐텐데...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파하고 분노하고 있지만 단지 말할 수 없을 뿐인건데... '이런 일'과 '저런 일'의 구분이란게 대체 어떤 의미인건지. 이런 일에도 제대로 분노하고, 저런 일에도 함께 아파하면 안되나? 


이런 일이 있었다. 지난 번에 해고 당한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 프로젝트를 페북에 공유하며 나도 동참하겠노라 공언했었다. 송금하지 않았다. )부끄) 반대로 단 한번도 페북에 공유하지 않은 어떤 프로젝트에는 선뜻 동참했다. (뿌듯) 각자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행간이 있는 법이다.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책임지지 못할 것들과 마음으로만 공유하는 것들이 그림자처럼 존재하곤 한다. 그러니 괜히 탄식하지 말고 그냥 신뢰하면 좋겠다.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분노했다가, 소망을 걸어보았다가... 그렇기도 하며, 이렇기도 하며 살아내고 있는 중이니까. '방 청소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가도 엄마가 '방 청소 좀 해라.' 핀잔주면 들었던 청소기도 놓는 법이니까. 우린 어느새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법을 잃어버린듯 하다. 마치 건조한 공간에서 바스라지는 식빵덩어리처럼 팍팍해졌다. 



서툰 말과 글이란, 때론 참 덧없다. 그냥 조용히 누군가의 손을 꽉 잡고 온기를 나눠볼 뿐이다.

TOTAL 230,412 TODAY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