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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15. 4. 3. 00:33

[주간경향][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삼류 똥통 학교 다니는 주제에"

"삼류 똥통 학교 다니는 주제에!"

대학교 1학년 때였나, 나와 격하게 싸우던 동생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동생은 부모님께 '뒤지게' 혼나고 눈물 뿌리며 사과했지만 삼류. 똥통. 이라는 말은 한동안 내 마음에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동생은 모두가 인정하는 '모범생'이었다. 부모님은 명문대를 다니는 동생과 나를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구분은 하셨다. 누군가에게 동생을 소개할 때 "OO대 차석으로 합격"이라 소개했고, 나를 소개할 때는 "문예창작학과 다니는데 나중에 작가 될 거“라 소개했다. 다니는 학교 이름을 굳이 소개하는 것과 애써 하지 않는, 애매한 차이를 눈치채버렸지만 서운해 하지는 않기로 했다.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의 차이를 아는가? 날씬한 사람은 티 쪼가리에 바지만 입어도 멋이 나지만 뚱뚱한 사람은 가리고 싶은 곳이 많아 옷을 고를 때 마음이 복잡해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준'에 의해 보잘것없다고 판단하면 자신을 설명하는 말들이 길어지는 법이다. 나에 대한 부모님의 설명이 길어졌던 것처럼. 누구는 학교 이름만 말해도 그 인생이 설명이 되지만(때로는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서 설명해준다. "얘 S대 다녀"), 어떤 인생은 긴 설명이 필요하다. 나도 그랬다. "어느 학교 나왔어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왜 굳이 그 학교를 갔어야만 했는지, '고1때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학교를 못 가 중간고사 전 과목 빵점을 받고, 내신을 망치고 슬럼프에 빠졌다가 내가 가고 싶었던 과를 가기 위해 그 학교를 택했으며…' 라는 길고 긴 이야기를 '변명'처럼 주렁주렁 늘어놓아야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를 설명할 때 굳이 '학교'를 밝히지 않게 되었다. '나를 판단할 수 있는 선이해의 단서를 최대한 없애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꿀리기' 싫었다.

그래도 삼류든, 똥통이든 '학번'이라는 이름표를 가진 사람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예전 다니던 직장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결혼하여 육아에 전념하다가 입사한 동료가 있었다. 배울 점 많은 사람이었다. 그 동료와 함께 지내며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몇 학번이세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을.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분명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삶도 있을 텐데 우리는 어쩌자고 "몇 학번이세요?"라는 질문을 그리 당연하게 던졌던가. 상대방이 "저 대학 안 나왔는데요"라고 대답하면 왜 당황했던가. 학벌과 스펙이 '낙인'이고 극복하기 힘든 '계급'이 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얼마 전, 엄마와 심하게 다투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들을 표창처럼 던지며 싸웠다. 내 인생에 대한 엄마의 총체적 평가는 이랬다. "네가 잘못해서… 노력 안 해서…" 서툴고 부족할지라도 최선을 다한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사랑하는 이의 냉정한 평가를 들으니 내 소중한 무엇이, 단단하게 지켜온 한 부분이 휘청거렸다. 어떤 인생인들 잘못이고, 노력을 안 한 결과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우리 인생이 보잘것없는 것일까. 누가, 무엇이, 우리 인생을 그토록 보잘것없게 만드는 것일까.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하거나 '일잘'과 '일못'으로 구분할 때 알게 모르게 촘촘하게 깔린 덫을 본다. 누군가에게는 그것 덫이 학벌일 수 있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험일 수 있겠다. 어쩌면 모양 틀처럼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틀 밖의 인간들을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사회 자체가 덫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덫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때때로 과거 어느 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 해 그 시험이 정말 내 인생을 보잘것없게 만든 것일까. 나는 정말 잘못했던 것일까.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어서 여전히 '일못'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가만히 고개를 저어본다. ‘네 잘못 아니야. 보잘것없지 않아. 충분히 예뻐’라고 나에게, 오늘도 최선을 다했으나 '일못'이어서 슬펐을 누군가에게 말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금은 이것뿐이어서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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