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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력강한사랑

가끔 문득 때때로 조잘조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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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15. 4. 3. 00:19

[주간경향][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아내를 드립니다"

일명 '땅콩 회항'으로 유명한 조현아씨가 구속되던 날, 그의 동생인 조현민씨는 언니에게 '반드시 복수할거야'라는 문자를 남겼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비난을 받자 그는 SNS에 사과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 중요한 글에 오타를 냈다. '변명'이라 써야 하는데 '변멍'이라 쓴 것이다. 조현민씨의 오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과거 '명예훼손'을 '명의회손'이라 하여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물이다. 뭇 사람들은 그의 오타를 두고 무식하다, 사과에 성의가 없다 비난하지만 나는 오타 문제로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는 지독하게 '일 못하는 사람(일못)'이기 때문이다.

“정신 차리고, 성의껏, 똑바로 안할래?”

언젠가 중요한 문서에 오타를 낸 나에게 선배가 외쳤다. 그렇다. 오타를 낸 ‘일못’은 결과적으로 정신과 성의와 최선을 상실한 인간으로 취급될 뿐이다. 능력과 결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오타란 ‘일못’ 을 증명하는 낙인이 된다. 하지만 억울하다. 그것만으로 나의 정신과 성의와 최선은 그렇게 간단하게 무시당해도 괜찮은가? 결국 나는 ‘오타’같은 존재였던가? 세상의 모든 ‘오타’ 혹은 ‘오타 같은 존재들’은 나쁜건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자나 깨나 부르짖는 '창조 경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못'들이다. ‘일못’들은 조현민씨는 명함도 못 내밀 희귀한 오타와 이면지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창조적 인간들이다. 어이없는 오타 창출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어 명랑 사회를 선도하고, 그 오타의 결과로 생산된 이면지는 지류, 컴퓨터 소모품 등 국/내외 산업 활성화에 기여한다. 게다가 ‘일못’들은 지극히 이타적인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못' 행위를 통해 동료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조현민씨만 하더라도 ‘뉴스'를 창조하여 언론사 및 각종 웹사이트 클릭 증가를 유도하였으며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를 생산하느라 살신성인하였으니 얼마나 창조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인가.

그러므로 나는 예리한 칼날처럼 나를 스치며 자존감을 베었던 무수한 오타들과 '일못'이었던 순간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싶다. '반전 평화'여야 하는데 '반 평화'라고 인쇄된 책을 끌어안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선배의 귀한 출산 소식을 전하며 '득녀'를 '득년'이라고 써서 본의 아니게 패륜 후배가 되었던 기억, 단체 대표 이름 중 한 글자인 '희'를 '싀'로 써서 졸지에 세상에 없는 문자를 창조했던 기억, 행사 신청하신 분께 '안내'를 드려야 하는데 '아내'를 드린다고 하여 경악했던 기억, '2003년'에 무려 '20003년' 연간 보고서를 미리 만들었던 기억… (지면 관계상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다.) 돌이켜 보니 오타를 발견하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던 순간들이 결코 짠내와 땀내만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일못’이었지만 그 과정에 깃들었던 그 시절 나의 정성과 최선, 뜻하지 않은 살신성인으로 인해 모두 함께 낄낄거릴 수 있었던 추억으로도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 하나 간직하지 못한 ‘일 잘하는 사람(일잘)’들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이란 말인가. 어쩌면 일못들은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작은 숨구멍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런 숨구멍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세상이란 얼마나 슬픈 곳이란 말인가.

오늘도 나는 ‘오타’를 방지하기 위해 봤던 글을 보고 또 보며 고치고, 또 고친다. 그것이 내가 보일 수 있는 정성이요,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래봤자 결국 오타는 필연이요, 운명이다. '오타'에 대해 쓴 이 글에서도 오타가 암약하고 있었으므로 함께 원고를 점검했던 '일못'들에게 타인의 글에서 오타를 발견하는 짜릿한 쾌감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만족한다. “오타낸 사람 함부로 비웃지 마라. 당신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즐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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